장마가 오는 6월 즈음, 구두 장인을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 1학년생 타카오는 비가 내리는 날 아침이면 '비가 오는 날에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학교 오전 수업을 빼먹고 어느 공원의 일본 정원에서 구두를 스케치한다.
어느 날, 일본식 정자에 앉아서 구두의 스케치를 하던 타카오는 옆에서 초콜릿을 안주삼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수수께끼의 여성 '유키노'를 만난다. 첫 만남 이후로 두 사람은 비가 내리는 날만 되면 만남을 거듭하며 차차로 마음이 통하게 된다.
있을 장소를 잃어버렸다는 유키노에게 '그녀가 더 걷고 싶어지게 되는 구두를 만들어 주고 싶다'라고 바라는 타카오. 유월의 하늘처럼 어쩐지 나른히 내키지 않고 흔들리며 움직인다. 서로의 마음처럼 장마는 걷혀가려 하고 있었다.
언어의 정원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다소 짧은 분량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입니다.
대략 40몇분 정도 밖에 안되니 잠깐 시간내서 보기에 좋습니다. 이하 결말 스포일러 있습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1학년 타카오와 성인 여성 유키노(알고보니 같은 학교 샘이었던 여성)가 비오는 날마다 공원에서 만나 썸을 타는 내용입니다.
서로 같은 쉼터의 벤치에 90도 각도로 앉아서 각자 할일을 하고 잡담 좀 나누는 시간을 고즈넉하니 보내는 장면이 많습니다.
사회일로 상처를 받은 유키네가 타카오로부터 인간적인 힘과 격려를 얻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 전체적인 구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향후 구두 장인이 되려는 생각을 가지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타입. 조용한 편이지만 꽂힌 것에는 몰두하는 성격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우직함 때문에, 유키노에게 상처 준 선배들에게 정면으로 항의하다가 얻어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키노를 굳이 비오는 날에만 만나러 간다는 것에서 너무 고지식한 타입이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비 안 오는 날에 오지 않는 타카오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져버린 여인. 캐릭터 자체의 인상은 상당히 멘탈적으로 섬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생활에 치여서 쓰러져버린 우리네 성인들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고딩인 타카오와 유키노는 결국 제대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유키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을 할 힘을 얻고 떠나갑니다. 클라이막스에서 유키노가 울면서 감정을 토로하는 것은 사랑 고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힘든 세상에 대한 한탄과 그럼에도 세상에 작게 빛나는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깨달음의 고백이었던 것 같기도 했습니다.
유키노에게 타카오는 '타카오'라는 인격적 개인이 아니라, 그저 쉬어가는 '공원'과 같은 존재였던 것 아닐까요.
훗날 다시 만나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요.
상처만 주는 세상일지라도 숨 돌릴 곳은 있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