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는 한 마녀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일레이나. 여행자로서, 다양한 나라와 사람을 만나며 길고 긴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만 갈 수 있는 나라, 근육을 정말 좋아하는 거한, 죽음의 문턱에서 연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청년, 멸망해버린 나라에 홀로 남겨진 왕녀, 그리고 마녀 자신의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일.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과 누군가의 아름다운 일상을 접하며 오늘도 또 오늘도 마녀는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처음 1화를 보았을 때 예상된 것은 조금 따뜻하고 훈훈한, 그러다보니 조금 지겹기도 한 여행기였습니다.
주인공이 마녀로서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가 기다리지 않을까 싶었죠.
그러나 그 예상은 좋은 의미로 빗나갔습니다.
꽤 어두운 에피소드들이 줄을 잇는데, 잔혹동화, 혹은 블랙코미디 같은 씹는 맛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있습니다.
'불쌍한 이를 위해 희망을 보여주었더니 더욱 절망하게 되는 이야기', '소녀를 구출하려 했으나 사실은 그녀가 살인귀였던 이야기'와 같이 어둡다 못해 깜깜한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그러한 비극의 내용이 짧은 화수 구성안에서 꽤 잘 짜여져 있어 몰입감을 더해줍니다.
사실 이렇게 못내 어둡기만 하다면 보기 힘든 작품일 수도 있는데요. 이 작품은 이를 중화시켜주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에피소드들은 잔혹하고 애처로운 내용들이 많지만, 주인공인 일레이나는 밝고 의지력 있는 인물입니다. 비극에 굴하지 않고 마주치는 사건과 사람들을 자신 안으로 끌어안으며, '관찰자'로서 여행을 계속해나갑니다. 일레이나가 이런 성격의 인물이 아니었다면 어떠하였을지, 마지막 12화에서 '다른 세계의 일레이나'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중심을 잡고 있었기에, 작품이 쳐지지 않고 담담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주인공의 절친(?)인 사야나 그외 스승들과의 훈훈한 에피소드가 양념으로 들어가 있는 부분도 이야기의 분위기를 상향시키는 요소였습니다.
주인공은 대다수의 상황에서 '관찰자'로서 자세를 보이는 모습이 강합니다. 누군가가 불행에 빠지더라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구제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슬픈 모습'을 눈에 담고 다음 마을로 떠나지요.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자신이 사태에 휘말린 경우' 또는 '의뢰가 있는 경우'로 한정되는 것 같네요.
물론, 현대인인 우리는 그 모습이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불행에 먼저 손 내밀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그런 모습이 매력적인지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습니다. 저는 '저기서 왜 그냥 떠나버리지?'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달콤쌉싸름하고 진한 다크초콜렛 같은 여운을 가진 여행기.